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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찾으면 불교가 보인다.

사찰 예절 조회 수 51963 추천 수 0 2012.02.21 20:08:31

이곳에 글들은 선송사 와운당 서가에 소장되어 있는 책의 글에 약간 가미한 글들입니다.

재미있고, 편하게  보시고 물러서지 않는  불심을 키우세요

 

절을 찾아가자 황토 묻은 만행화를 신고 배움을 담을 걸망을 꺼내 매고 구름에 묻고 들꽃과 풀향기를  도반삼아

산에 들어, 나무 뿌리 따라 골짜기 돌아 소리치며 튀는 계곡 물 건너서  산바람을 앞세우고  발에 채는 돌 뿌리의 재촉에  용맹심내어 걷다 보니 고송과 고목이 울울 창창 서있는 흙내 나는 길을 만났다.

새소리 솔바람에 힘든 땀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분으로 고개드니

내 앞에 튼튼한 두다리에 조각머리 지붕얹은 건물이 서있다.

“너는 누구니”?  “나는 일주문 이야, 그런데 너는 여기에 왜 왔어?” “절 찾아 불교를 알려고 왔지!”  

“그래! 그러면 나부터 알고 가야해, ”

 

☞배웁시다-  일주문(一柱門) /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불리우는 첫번째 관문! 흔히 지붕을 얹은 일반 건축물이라면 네개의 기둥을 사방에 세우고 지붕을 얹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주문만은 사방이 아닌 일직선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양식을 보이게 된다. 왜 사찰에 들어서는 이 첫번째 문만 독특한 양식을 취한 것일까? 그것은 일심(一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伽藍 : 절.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부산히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진리의 세계는 한 마음이라야 통한다. 그 마음이 쪼개어지고 나누어져 있을 때 삼매(三昧)는 생겨나지 않으며,  삼매가 없는 수행이라면 결코 진리와 하나가 될 수없는 것이다. 부처는 일심을 깨달은 분이요, 일심을 회복해 가진 분이다. 일심을 잃어버린 자, 그가 곧 중생이다. 성불을 염원하는 중생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일심을 모아 삼매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문을 들어서는 구도자에게는 신심(信心)을 성취시키는 기본적인 몇 가지 수행이 요구된다. 

첫째,  철두철미하게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리를 믿어야 한다.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닥쳐온다는 인과의 도리를 믿고 이 문을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과의 도리를 믿는것, 이것은 불교 수행의 첫걸음이다. 이 도리를 믿지 않으면 모든 수행도 회의와 갈등으로 치닫게 되어 결과적으로 삼매를 이룰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 마음이 곧고 정당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십선(十善)을 닦으라는 것이다.

1. 산 목숨을 죽이지 말며 (불살생/ 不殺生: 모든 생명을 존중할것 이며)

2. 훔치지 말며 (불투도/ 不偸盜: 바르지 않은 물건은 주지도 갖지도 말것)

3. 간음하지 말며 (불사음/ 不邪淫/ 불사음: 배우자 외에 부정한 일, 바람피는 짓)

4. 거짓말하지 말며 (불망어/ 不妄語: 진실 된 말을 할것)

5.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것 (불악어/ 不惡語: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말것)

6. 중상 모략과 이간시키는 말을 하지 말며 (불양설/ 不兩舌: 이쪽 저쪽 두말 하지 말것)

7. 희롱하는 말을 하지 말며 (불기어/ 不綺語: 입에 발린 말 말것)

8. 탐욕에 빠지지 말며 (불탐욕/ 不貪慾: 헛된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것) 

9. 시기. 질투. 분노하지 말며 (불진에/ 不瞋에: 화내고, 성내지 말것)

10. 사견을 품지 말라 (불사견/ 不邪見: 잘못 된 생각).      비록 이와 같은 덕목(德目)들이 평이한 규범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십선이야말로 스스로의 인생 행로를 지켜주는 스스로를 위한 철저한 무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서 깨달음(보리/菩提: 부처님의 지혜를 이르는 말)을 구하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생사(生死)라고 하면 육신이 나고 죽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 생사를 보다 심도있게 조명하여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도 생사라고 보았다. 일심의 바다에서 한 조각의 번뇌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까지를 생사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르면 번뇌로 인생을 채우는 중생의 삶이란 곧 생사의 연속이다. 문자 그대로 `중생(衆生)` 인 것이다. 그러나

중생의 번뇌가 일심의 바다를 결코 떠난 일이 없었고, 그것이 곧 마음의 파도임을 자각할때, 깨달음의 문이, 성불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일주문 앞에 서면 마땅히 인과의 도리를 믿겠다는, 마땅히 십선을 닦겠다는,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발심(發心)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일심을 완전히 회벅해 가진 불국정토를 향하는 구도자의 참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일주문의 경지는 아직 무언가를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이다. 다만 분명한 결심과 실천 의지를 보인 단계일 뿐, 사실상 그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기신론>에서 밝힌 시각(始覺)의 네 단계 중 `불각(不覺)`에 대입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일주문의 지붕은 대체로 다포계의 먖배지붕 양식을 취하고 있고, 그 규모는 어떠한 절에서나 일주 삼칸(一柱三間)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 일주 삼칸이 뜻하는 바는 <법화경>에서 천명한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로 나뉘어진 불교의 여러 교법을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一佛乘)의 길로 향하게금 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문에는 많은 현판들을 걸어서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일주문으로 동래 범어사의 일주문과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합천 해인사의 일주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통도사의 경우 문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 란 현판을 걸어 사찰명을 밝히고 좌우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와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柱聯)을 붙여서 불보사찰(佛寶寺刹)인 이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고, 범어사의 경우에는 문 중앙에 `조계문(曹溪門)`. 좌우에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와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현판을 걸어서 이 절이 선수행 도량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불국정토에 나기를, 부처를 이루기를 일심으로 염원하며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 이곳에서 모든 불자는 인과법과 십선과 보리심을 되새기며, 합장한 자세로 마땅히 마음을 모으고 일승의 길을 향하여 정진을 다짐해야 하리라. 

 

아하!  일주문은 부처님을 만나기 위한 첫 관문 이구나!  나도 일심을 갖고 일주문을 지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삼아 초심의 걸음으로 걷다보니 천왕문이다.

 

배웁시다. 天王門/ 일심으로 뜻을 다지고 일주문을 통과하여 수미산을 오르는 구도자에게는 숱한 역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정상은 구름 속에 가리워져 있어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걸음은 차츰 무거워져 몸을 지탱하기 어려우며, 큰 짐승의 울부짖음과 독충들의 몸짓은 금방이라도 산 아래의 집을 그립도록 만든다. 그처럼 굳고 지극했던 신심도, 성불의 염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 길을 걷다보니 한풀 꺾였으리라.......  이때 깊은 산중, 수미산의 중턱에 있는 사천왕의 궁궐이 모습을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천왕문 이다. 굳게 닫힌 천왕문 !  그 대문의 좌우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키고 있다. 조형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천왕문의 대문에다 금강역사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경우가 많고, 때로는 천왕문 안에 조각상을 만들어서 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금강역사만을 별도로 모신 금강문(金剛門) 을 천왕문 앞쪽에 세운 경우도 볼 수 있다. 먼저 금강역사에 관하여 살펴본 다음 사천왕의 서계로 들어가 보자,

(1) 금강문/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이다. 대체로 불탑(佛塔)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스런 사적(事蹟: 일)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5백의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현겁(賢劫) 천불(千佛)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외쪽에는 밀적금강(密蹟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게 된다. 이 중 나라연금강은 천상계(天上界)의 역사로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쥐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의 우두머리로서,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은 모두 듣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으므로 '밀적'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들 두 역사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 두광은 이들이 단순하게 힘만 센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살펴보면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며,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는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글자이다. 두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과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와 '훔'은 범어인 '옴'에서 나온 말이다. 옴은 'A+u+mㅡ'의 결합문자로서, A는 창조와 출발과 시작, u는 유지와 존립, m은 끝과 소멸 등을 상징하며, 'ㅡ'는 시작과 끝을 넘어서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리에 대한 여운을 뜻한다. 따라서 이 네 가지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옴'은 영원, 완성, 조화, 통일 , 성취 등 모든 성스러움을 포함하고 있는 신령스러운 주문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두 금강역사는 '아' . '훔'으로 나누어서 이 신령스런 주문인 '옴'을 표출시킨 것이다. 즉 수미산 중턱까지 올라온 구도자를 향하여, '옴'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이제 머잖아 완성과 영원의 자리에 이를 수 있으니 힘을 내라는 격려의 말을 하고 있음이리라, 그리고 '아금강역사'가 공격형 자세를 취하는 것은 출발 시점에서의 진취적으로 나아감을 뜻하고, '훔금강역사'가 방어형 자세를 취하는 것은 소멸의 단계에서 거두어 들이는 것을 상징화시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웃옷은 벗고 하의만을 입은 채 무기를 쥐지 않고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모습 등을 취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중국 및 일본과는 달리 무섭다기보다는 악의(惡意)가 없는 순진성을 읽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무서운 모습을 취하여 악귀(惡鬼)를 쫓아내겠다는 의미보다는 그 순진성으로 수미산을 올라온 지친 구도자에게 더한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고자 함일 것이다. 조형미로 볼 때 가장 완벽한 금강역사상은 석굴암(石窟庵)의 것이 가히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천왕문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전각이다. 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외곽을 맡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며, 동. 서. 남. 북의 네 곳을 지키게 된다. 이 천왕상들은 불겨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 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 된다. 이 때 발 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의 인도 종교에서 숭앙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천왕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 지점의 동. 서. 남. 북에서 각각 그들의 무리들과 함께 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있다.  

즉, 사천왕과 그 부하들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상의 선악을 살피다가 착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매달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에는 태자(太子)가, 15일에는 천왕 자신이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최고의 신)에게 반드시 보고하게 된다. 

사천왕 가운데 동쪽을 수호하는 왕은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에 있는 천궁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한 분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면서 언제나 인간을 고루 보살피고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온몸은 약간 푸른 빛을 띠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은 주먹은 쥐고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의 휘하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 건달이라는 말의 유래가 됨)와 부단나(富單那)를 거느리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유리타에 살고있다. 이 천왕은 자신의 위덕(威德)을 증장시켜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구반다(鳩槃多: 사람의 정기를 빨아 먹는귀신. 말 머리에 사람의 몸을 취하고 있다)와 아귀(餓鬼: 굼주림 과 불만의 귀신)인 폐례다 등을 거느린 증장천왕의 몸은 붉은 기운이 도는 적육색을 띠고 있으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용을 꽉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로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살짝 쥐고 있는 형상을 취한 경우가 많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백은타에 살고 있다. 광목천왕은 흔히 잡어(雜語) . 비호보(非好報). 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이 천왕의 몸은 백색으로 장식되러 있고, 웅변을 통하여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다른 천왕과는 달리 입을 벌린 형상을 취하고 있다. 또 눈을 부릅뜸으로서 그 위엄으로 나쁜 것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 또는 광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삼지창을 들고 있고 왼손 위에는 보탑을 받들고 있다. 이 보탑 속에는 진귀한 보물이 많이 간직되어 있는데, 이를 중생에게 나누어주어 복과 덕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무리로는 용신(龍神)과 식혈육귀(食血肉鬼)로 불리우는 비사사 등이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이라 고도 한다.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에 살고 있으며, 언제나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고 하여 '다문' 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이며, 불교에 귀의한 뒤 광명신(光明神)이 되었다가 다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수미산 중턱 북쪽을 관장하는 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몸은 흑색 계통이며, 왼손으로 비파(琵琶)를 잡고 오른손가락으로 비파줄을 튕기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백옥 같은 이빨을 드러낸 채 환한 미소를 띠면서 비파를 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진리를 '다문' 함으로써 샘솟게 된 법열(法悅)을 모든 중생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이 천왕에게 속한는 무리로는 야차(夜叉)와 나찰(羅刹)이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사천왕의 피부색과 방위이다. 이것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설(五行說)로 풀어야 한다. 이들 오행에 방향을 대입시키면 목은 동쪽은, 화는 남쪽, 토는 중앙, 금은 서쪽, 수는 북쪽이 된다. 이제 살펴보자. 동방 지국천왕의 얼굴이 푸른 것은 동쪽 목(木)의 색이 청이기 때문이고, 남방 증장천왕이 붉은 색을 띤 것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남방 화(火)의 빛깔이 적색이기 때문이다. 서방과 북방의 천왕도 오행을 따라 금(金)의 백색과 수(水)의 흑색을 취한 것이다. 그렇다면 동서남북의 사천왕에게 둘러싸인 중앙은 무엇이 자리하는 곳일까? 그 중앙은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다. 황금빛(紫金色)을 띤 부처님, 오행 중 중앙에 위치하는 토(土)의 자리에는 토(土)의 황색빛을 띤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천왕문 중앙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은 까닭은 일주문과 천왕문이 수행의 공간적 상황, 불국정토로 향하는 하나의 단계를 상징하며 그 자리에 건립되았기 때문이다. 이들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일반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양식을 취하고 있으나, 조선 인조 때에 세워진 속리산 법주사의 천왕문은 정면 5칸 규모로서 매우 큰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금강역사와 천왕문을 왜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의 중간 위치에 두었으며, 천왕문을 들어서기 위한 수행과 마음 가짐은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천왕문과 금강문을 세운 까닭은 사찰을 외호하고 악귀(惡鬼) 등을 내쫓아 사찰을 청정도량(淸淨道場)으로

만들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찰을 찿는 사람들의 방일한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고, 또 이 수호신이 지키는 사찰을 모든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한 장소라는 신성관념(神聖觀念)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러하다. 그러나 사천왕이 수미산 중턱을 지키는 데에는 더큰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국정토를 향하여, 성불을 염원하며 수미산을 오르기 시작한 구도자. 그들이 수미산 중턱을 오를 즈음이면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다. 출발 때의 맑고 굳건하던 심신이, 많은 역경과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순수성을 잃고 갈등에 휘말릴 때도 된 것이다. 이러한 구도자를 금강역사와 사천왕은 맞이한다. 이들 신들은 말한다. "왜 여기서 주저 앉으려고해, 왜 여기서 포기하려는 거야. 절대로 않되. 이제 정상이 머잖은 곳에 있어. 조금만 힘내. 처음 일주문을 들어 설 때의 그 순수하고 지극한 일심이면 못 오를 것도 없는 것이야. 그대가 가는 길은 우리가 지켜 줄께. 힘을 내. 힘을 내라고......."

실로 사천왕은 힘에 겨워하는 구도인들의 마음 속에 깃든 잡된 요소들을 뿌리뽑기 위하여 무서운 모습으로 수미산의 중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깊이 느껴야 한다. 사천왕은 청정도량으로서의 사찰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행자의 마음 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제거하여 다시 일심 정진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거기에서 있는 것이다. 단지 사찰을 청정도량으로 지키고 악귀를 내쫓기 위해서라면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보다 더 힘이 강하고 법력이 깊은 사찰 안의 부처님이나 보살들로 족할 것이다. 그리고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모두 제도하겠다는 부처님의 도량일진대, 어찌 악귀나 사심있는 자의 침범을 두려워 하겠는가. 실로 수미산 중턱까지 오른 그 장한 구도자에게 포기함이 없이 끝까지 오를 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금강역사와 사천왕은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천왕문을 <대승기신론>의 시각(始覺)의 네 단계에 대비시켜 보면 상사각(相似覺)에 해당한다. 즉 이 문을 통과 할 수 있으면 표면상으로는 근사(近似)한 깨달음, 상사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도자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여섯가지 그릇된 생각을 제거해야한다. 1-욕심(탐:貪), 2-시기 . 질투 . 분노하는 마음(진:瞋), 3-자기자신의 본체를 모르는 어리석음(치:癡), 4-교만(만:慢-교만과 게으름), 5-의심(의:疑-믿지 못함.), 6-고집(견:見) 등의 그릇된 모습들을 깨닫고 그들의 생각에서 그러한 그러한 그릇된 모습들을 없이하여, 크게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천왕은 그 문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즉, 이와 같은 망념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가 없다는 사실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때에 이르러 일심에 근거를 둔 새로운 발심을 하여야 한다. 직심(直心) . 심심(深心) . 대비심(大悲心)으로 구성된 삼종발심(三種發心)이다. 직심은 올바로 진여법(眞如法)을 생각하는 것이다. 즉 참되고 한결 같은 진여의 본성에 의거하여 주(主) . 객(客)의 분별을 지향하고 주 . 객 일치의 평등성을 지닌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두번째의 심심은 마음의 근원을 파헤쳐 들어가서 그 자체를 발굴하고 빛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깊은 마음 속에는 지극한 선(善) 만이 있다. 그 선한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어 온전히 발현시키는 그 자체가 자기 스스로를 총명하게 하는 행위의 근본이 된다고 한다. 세번째의 대비심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즉, 모든 중생을 남김 없이 고통 속에서 구제하겠다는 마음이다. 이는 남을 이롭게 하고 남을 총명하게 하는 행위의 근본이 된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마음을 갖추어서, '악이란 악은 남김없이 버리고, 선이란 선은 실천하지 않음이 없으며, 한 사람의 중생도 버림이 없이 고통에서 구제하겠다는 결심을 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 이라고 하였다. 

사천왕문에 이르러 구도자는 여섯 가지 그릇된 생각들을 제거하였는가를, 세 가지 발심이 확고이 자리를 잡았는가를 점검하여야 한다. 그리고 수미산 정상에 있는 불이문(不二門)을 향하여 한발한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것이다.

 

☞배웁시다/ 불이문(不二門)/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천왕문을 지나 수미산 정상에 오르면 제석천왕(帝釋天王)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 위에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서 있다. 이 불이문이 곧 해탈문(解脫門)이다.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먼저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과 제석천왕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 보자. 도리천은 불교의 28천(天) 중 욕계(欲界) 6천의 제2천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상에서는 가장 높은 곳, 하늘세계로는 아래에서 두번째 되는 곳에 도리천이 있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사 본 도리천의 전체 모양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는 선견천(善見天)이라는 궁궐이 있어 제석천왕이 머무르고, 사방에는 각기 8성씩 32성이 있어 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이들 32성을 모두 관장한다. 그리고 중앙의 선견성과 주변의 32성을 합한 33성으로 도리천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천상계(하늘세계/ 신들의세계)를 "33천"이라 부르고 있다. 33천을 도리천이라고 한 까닭도 33을 인도말로 '도리(Tray)'라고 한 때문이다. 이들 33천은 매달 8. 14. 15. 23. 29. 30일의 육재일(六齋日)마다 성밖의 선법당(善法堂)에 모여 법에 맞고 법답지 않은 일을 평론하게 된다. 이때 지상에 있는 중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함께 다루게 된다고 하여, 불교 신도들은 6재일에 한 끼만의 식사를 하는 등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면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팔재계는 팔관재계(八關齋戒)라 고도 한다. 1/ 중생을 죽이지 말라. 2/ 훔치지 말라 3/ 음행하지 말라 4/ 거짓말 하지 말라 5/ 술마시지 말라 6/ 꽃다발을 쓰거나 노래하고 춤추고 풍류잽이를 하지 말며, 가서 보고 듣지도 말라. 7/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라. 8/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 이상의 여덟 가지가 팔관재계다. 사미십계의 제6과 제7을 팔관재계의 제6으로 함께 묶어 엮었고, 사미십계의 마지막 계인 "돈과 금은 보물을 가지지 말라"는 조목은 세속인에게 합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삭제시켜 이 팔관재계를 만든 것이다. 즉, 출가자가 지켜야 할 기본 십계를 재가 신도에게 맞도록 고쳐 놓은 것이 팔관재계이며, 이와 같이 출가 수도승이 행하는 생활을 한 달에 여섯 번씩 행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청정한 삶과 마음의 정화를 유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팔관재계는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행할 일이다. 특별한 감독관이나 구속력이 있을 수 없다. 하여, 그 정신적인 구속력을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33천의 신들에게 부여한 것이다. "하늘이 나의 선행을 보고 있다. "

이 한마디가 갖는 권능은 지대하다. 나의 선악과 수행을 하늘이 안다고 하는 믿음이야말로 나약한 중생에게 있어 크나큰 의지와 힘이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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